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가령 아마미의 검정 토끼 관찰을 통해 볼링공을 묘사하는 경우라도. 그렇다면 판단은 왜 조금만 내릴까?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폭력적이라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건네주는 데 있다."

p. 19

"그러나 그들에게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있는 것도 있다. 많지는 않아도 조금은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계속성이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실증된 영역에서 일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알 수 있지만, 문학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일례로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무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역사적은 즉효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학은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거꾸로 그런 것들에 대항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p. 29

"내가 사린 가스 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고단샤)를 썼을 때도 절실하게 깨달았지만, 우리네 세상사의 대부분에는 결론 따위가 없다. 특히 중요한 문제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직접 발로 뛰면서 1차 정보를 많이 수집할수록, 취재에 시간을 더 투자할수록 매사의 진상은 혼탁해지고 방향을 잃은 채 어지러이 내달린다. 결론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시점은 이리저리 갈린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인지,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p. 43

"그러나 나는 일단 글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인간이므로 '그건 경험이 전부야. 설명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뭐든 좋으니 재즈 CD를 열 장쯤 차분히 듣고 나서 다시 찾아와'라는 식의 깐깐한 노인네 같은 언사를 무작정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해 버리면 편하겠지만(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정당한 대응일 거라는 생각도 있지만) 그렇게 매정하게 내치듯 단정해버리면 대화는 벽에 부딪쳐 툭 끊기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글쟁이가 취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p. 207

"여기에 실은 레이먼드 카버나 팀 오브라이언의 작품의 번역 작업을 통해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소설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올바른 자세는 반드시 글에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인 것이다. 내가 특히 마음을 쓴 부분은 그들의 '올바른 자세'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잘 해나가고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p. 343

"나는 우연히 일본인으로 태어났고 쉰 살이 넘은 중년 남자지만, 그것도 이렇다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이야기라는 방 안에서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고,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며 소설의 힘입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그런 것들도 별문제가 안 됩니다. 당신이 누구든 이 방에서 느긋하게 쉬며 이야기를 즐긴다면, 뭔가를 함께 나눈다면, 나는 무엇보다 기쁠 것입니다."

p. 447

"우리는 당시 난로도 없었고 자명종 시계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토록 아무것 없이도 그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이었다고 기억합니다."

p. 455

© Kyuwon Le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