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모던, 한석정
"본 연구는 한국인이 지닌 신속과 근면의 뿌리를 식민 경험에서 찾고자 한다. 특히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 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 나아가 그 원류인 만주국(1932~45) 체제에서 그 뿌리를 찾을 것이다."

"근대의 다른 특질은 모방이다. 비단 동아시아뿐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 역사 또한 혁신의 모방이었다. 예컨대 "베니스를 암스테르담이, 암스테르담을 런던이, 런던을 뉴욕이 베끼는" 식이다. 이런 특질은 19세기 말 이래 적자생존, 동서양 식민주의, 국제 경쟁에 노출된 동아시아 지도자들에게 두드러졌다." p. 37
"필자는 역사학을 포함해 학문이란 도덕적이거나 인본주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두아라가 일렀듯, 역사학은 '진실'을 추구하며 근대 국민국가의 수단으로 복무해온 경향이 강하다. 학문은 영속적인 '진실'의 규명이 아니다. 푸코가 충고하듯 지식은 경쟁적으로 생산된다. 이것은 종결되지 않는, 열려 있는 세계로서 분출, 불연속, 단절, 전치, 변형을 겪는다. 식민주의 연구도 그렇다. 식민 시대의 실제 삶은 협력과 저항 사이의 드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p. 45
"1960년대의 한반도만큼 식민주의와 근대가 복잡하게 얽힌 곳도 드물다. 한국의 근대는 식민주의의 영향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입김과 복합적으로 얽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래 세계를 뒤덮은 냉전 경쟁은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자유주의와 그 대안인 사회주의라는 두 "서구 모더니즘의 대결 구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한 치 양보 없는 대립으로 심화됐다. 남북한이 채택한 모델은 바로 만주국의 총력전이다. 만주국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겪으며 전시와 준전시를 유지하고 사회적·경제적 자원을 전면적으로 동원했다. 총력전이나 국방국가 등의 용어는 중일전쟁 후 일본 제국 전체에서 사용되었지만, 그 개념들이 개화한 곳은 만주국이다. 이것은 만주국에서 젊은 날 중요한 경력을 시작했던 박정희, 김일성 등 후일 남북한 라이벌 체제의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극한의 냉전 경쟁을 치렀던 남한 재건 체제의 중요 지침이 됐다." p. 53
"피식민자는 이러한 차용과 토착화를 기반으로 후일 식민자나 선두주자를 추월할 수 있다. 그것은 주로 완전한 복제형 피식민자(예컨대 지주 계급 등 토착 엘리트 출신으로 제국의 중심부에서 유학한 1류 피식민자)가 아닌 서자형 피식민자(평민 출신으로 상향 이동을 기도한 2류 피식민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동 지주 집안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을 간 작가 이병주가 전자의 보기다. 그는 일본 대학가에서 섭취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을 작품에 현학적으로 퍼부었다. 후자는 (이병주가 평생 범죄자 집단이라 비판했던) 박정희, 정일권, 이선근, 신기석, 김성태 등 만주 출신으로서 재건 체제의 여러 분야를 이끈 인물들이다." p. 62
"일부 재만 조선인들은 총동원의 현장 혹은 혹독한 생태계인 만주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해 생존했고, 이 남다른 적응력은 해방 후 10여 년 동안 잠재돼 있다가 냉전 경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발현됐다. 이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전해진 흐름이 바로 '만주 모던,' 즉 건설과 동원, 경쟁 등 압축성장에 적절한 경직성 근대다. 두아라의 '동아시아 모던'이 19세기 말 전후 일본을 중심으로 서양 근대의 담론과 실행에 관한 동아시아의 지역적 조율이라면, '만주 모던'은 20세기 전후 만주를 통해 한국에 전달된 강박적 근대와 생존, 개척 등이 혼합된 이념적·실천적 구성물이다. 전자가 공시적이라면, 후자는 20세기 전후를 연결하는 통시적 개념이다." p. 69
"만주국 초반에 젠다오 지역과 1차 산업에 집중되었던 조선인들은 후반에 관료, 교육자, 의사, 군부 지도자 등 실로 광범위한 화이트칼라 세계로 진입했다." p. 123
"식민주의도 전파의 중요 메커니즘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의 국가 형성은 맨바닥에서가 아니라 여러 자원, 특히 식민주의적 족보의 도면과 재료, 실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 국가 형성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만주국을 포함해 일본 제국 내 여러 식민 국가는 메이지 국가 형성의 경험을 살려, 조립형 주택이 만들어지듯 용이하게 세워졌고, 이것은 전후 한국 등 동아시아의 국가 형성에 유산으로 작용했다. 만주국은 이런 연쇄 과정의 중요한 고리였다. 1960년대 한국 재건 체제는 만주국식 군·관료 양성, 통제경제뿐 아니라 국토를 갈아엎는 역동, 강건한 신체, 대중예술, 남성성 등의 자원으로 형성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추진됐다. 만주국 형성 자체가 이월과 속도의 산물이었다." p. 163
"만주 웨스턴은 한국 국민국가의 헤게모니가 드리운, 강한 남성이 본격적으로 구성되는 장르다. 주인공들은 가족의 상실, 이산, 실향, 배신, 장애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마침내 배신자와 밀정을 처단하고 민족의 원수인 일본군을 패배시킨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몇 사람만이 살아남아 원수를 갚겠노라 맹세한다. 그 강인한 남성상은 냉전 상황에서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를 떠맡은 한민족의 상징인 동시에 숭고한 헤겔적 담론의 담지자, 즉 봉건, 낙후, 암흑 등 전근대를 떨치고 발전의 희망을 향해 진군하는 주체였다." p. 436
"식민주의에 대한 해석은 간단치 않다. 이 시기 전체를 암흑으로 혹은 저항과 협력의 이분법으로 재단한다면 고난 너머 한국인들의 악착같은 따라잡기를 설명할 수 없다." p. 444
"식민 시대는 접변과 변용의 한 계기다. 문화 요소는 물처럼 여러 곳으로 흘러간다. 중심과 주변 간의 흐름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다. 주변은 식민자들이 제국의 중심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추진해보는 실험장이 되고, 동시에 이 실험은 중심과 탈식민 시대에 영향을 준다." p. 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