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박태원

"소년은 곧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신기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가평이 아니라 서울이다. 나는 그렇게도 오고 싶어 마지않았던 서울에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이 생각이 소년의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 모든 것에 감격을 주었다. 아무리 시골서 처음 올라온 소년의 마음에라도, 결코 그다지는 신기로울 수 없고, 또 아름다울 수 없는 이곳 '천변풍경'이, 오직 이곳이 서울이라는 그 까닭만으로, 그렇게도 아름다웠고, 또 신기하였다."


"더구나 그가 남의 앞에서 즐겨 꺼내보는 그 시계는 참말 금시계지만, 역시 참말 십팔금인 것같이 남이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싶은 그 시곗줄이, 사실은 오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발소 안에서의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소년은, 그의 태도와 걸음걸이가 점잖으면 점잖을수록에, 더욱이 속으로 우스웠다." p. 33

"이쁜이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어머니는 딸의 풀이 죽은 모양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그저 참아라...... 모든 걸 참구 지내라......" 그 말에 기운 없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내키지 않는 발길로 문지방을 넘어서려다 말고, 문득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이쁜이는, 그 순간 이제까지 용하게 참아온 울음을 그대로 터뜨려, "어머니. 왜, 왜, 날, 날, 여자루 나놨수?" 그대로 몸을 어머니의 가슴에 내어던져 흑, 흑, 느꼈다. 그러한 딸을 어떻게 달래볼 도리가 있을 턱 없이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그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p. 190

"가을도 이미 깊었다. 며칠 전 공일날, 신문사는 자기네가 주최한 소요산의 단풍놀이가 매우 성황이었다고 전하였다. 단풍놀이도 지금 한창일 것이, 요사이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뜩선뜩하기조차 하다." p.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