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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그리하여 이제 세상 이치를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부고를 듣는다. 예상치 못했던 어느 순간, 사랑하거나 미워했던 이의 부고를 듣는다. 무관심할 수 없는 어떤 이의 부고를 듣는다. 이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이제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부고의 체험은 다른 성장 체험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알 것만도 같았던 삶과 세계를 갑자기 불가사의한 것으로 만든다. 그 누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낱낱이 알겠는가. 이 세계는 결코 전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어떤 불가해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 우리의 삶이란 불가해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태로운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일이다."


p. 35



"그렇다면, 아시아미래지도자포럼이란, 미래에 꼭 지도자가 되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가진 이들의 모임을 뜻하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미래에 지도자가 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크게 당황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모임을 뜻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 꼭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p. 85



"사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판단과 선택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뿐인지도모른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으로 자신의 선택과 무관히 떨어진다. 물론 우리는 그 속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자잘한 판단들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주어져 있는 커다란 삶의 조건 속에서의 선택들이다. 사실 그 조건 자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배제되어 있다. 새로운 생명을 이 세계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이야말로 유일하게 그 조건에 대한 판단일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조건이 가진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이분법적 판단에 불과하긴 해도, 그것은 정말 유일한, 조건 자체에 대한 판단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이의 출산은 적어도 그 순간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한, 세상에 대한 평가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찌되었거나,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긍정의 표시다."


p. 254



"지식이 지식의 소유자에게 가져다주는 보다 깊은 신비는 바로 지식이 그와 대상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p. 280



"많은 도덕주의자들의 원칙이라는 것들이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헌신짝처럼 내던져져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보기 드문 원칙과 질서를 이 희대의 살인마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경이로운 체험이다. 기존 세계를 단순히 불평하거나 일탈행위를 일삼는 수준을 넘어, 기존 세계의 질서와 구별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독립적인 세계로 불릴 자격을 얻는다. 그렇게 볼 때, 한니발은 아주 심오한 차원에서 '진정한 개인'이다."


p. 290



"우리가 가장 상관하는 것은 늘 자신의 삶이며, 삶이란 저녁식사와 같은 일상의 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저녁식사 순간이 예술의 경지가 된다면, (바로 그 부분의)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한니발은 그러한 순간을 망가뜨리는 '무례한' 놈들을 싫어하며, 그들을 먹어치운다). 즉 예술의 인간에 대한 궁극의 공헌은, 만들어내거나 향수하기 위해 사들인 예술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예술품을 만들거나 향수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고양된 자신의 생 자체에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소가 일상임을 아는 사람이다."


p. 292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않고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그러한 책들의 주장에는 특히 확신이 없거든요. 그런 책들은 확신할 근거가 없는 것들까지 확신하기에, 그런 책들을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


p.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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