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이 시기에 강남 이주를 촉진한 또 하나의 요인은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붕괴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유사시 한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라는 문제는 서울 시민들의 머리 한구석을 차지한 꽤 진지한 걱정거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고 많은 서울 시민들이 한강을 건너는 한 이유가 되었다."

p. 67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좋은 인적 자원이 대형 교회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대형 교회가 반드시 좋은 교회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별개로 멀리서 강남의 교회를 찾은 훌륭한 인물들이 대형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 교회에서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자원들이 대형 교회에서 일개 군중으로 '전락'해 버리게 되는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큰 교회들이 거대한 건물과 시설로 교세를 자랑하는 모습은 결코 기독교 정신에 부합한다 할 수 없을 것이다."

p. 83

"예술의전당에서 호평받는 공간도 있다. 앞쪽이 성벽처럼 부담스럽게 길을 따라 높게 솟았지만 대신 그 뒤의 진입부는 넓은 계단이 시민들을 맞으면서 펼쳐진다. 높고 낮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며 계단이 이어지는데 이 계단은 시민들이 예술의전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바닥과 계단, 건물이 모두 같은 석재로 이어져서 통일감을 유지하면서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장면들이 빚어진다. 김석철은 이 계단을 구상할 때 불국사의 공간 연결 동선을 떠올렸다고 한다."

p. 143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정확하게 말하면 건축 전반의 문제라 할 수 있지만--습식 건축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데에 있다. 모든 건축은 물을 쓰지 않는 건식과 물을 쓰는 습식으로 나누어진다. 쉽게 말하면 나무건 돌이건 조립하여 세우는 방식이 건식이고 흙이나 콘크리트에 물을 부어 짓는 방식이 습식이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의 건축은 거의 다 습식이다. 습식은 시공이 간편하고 숙련공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장점 덕분에 습식 건축이 대세가 되고 그 덕분에 많은 아파트를 지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대신 한국인들은 건물의 내구성 저하와 새집 증후군이라는 두 가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습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대다수 건물들은 세월이 지나면 타일이 떨어지고 억지로 붙인 무늬목 같은 외장재가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중후해지기는커녕 우중충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장재를 강한 본드로 붙이는 방식이니 새집 증후군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p. 179

"이대로 영업 중지만 했어도 최소한 참극은 없었을 텐데, 보고를 받은 이준 회장은 중역회의 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우원종합건축사무소의 기술자들이 현장에 도착했고 다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임형재 소장은 건물 폐쇄를 주장했지만 이학수 구조기술자는 신공법으로 보수공사를 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으며 침하를 멈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리하여 경영진의 탐욕이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합리화되고 말았다. 이런 '전문성'은 결국 '참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 되고 말았다."

p. 225

© Kyuwon Le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