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과연 이게 원하는 일일까라는 불안은 없다. 다만 더 잘하고 싶을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자꾸 더 높은 곳만 보며 나를 괴롭혀왔을까.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아마 울 거 같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p. 63

"우리는 다 여러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전부다. 그걸 가지고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거나 그만두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머리로는 잘 아는데 마음은 잘 섞이거나 녹아들지 않는다. 불행은 불행대로 기름처럼 우위를 차지하고 행복은 밑으로 꺼진다. 그래도 이것들이 모두 담긴 통이 삶이라는 건 큰 위안이고 기쁨이다. 슬프지만 어쨌든 난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p. 103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남은 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면 기꺼이 그 삶을 끝낼 자유도 존중해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에게는 애도가 너무 부족하다. 죽은 자에 대한 존중도, 자유 죽음을 택한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실패했거나 포기한 낙오자로 여기는 사람들. 정말 끝까지 살아내는 게 이기는 걸까? 애초에 삶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을까."

p. 147

"언제부턴가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위축되지 말라는 말에 진절머리를 내는 나를 발견했다. 내향적이고 쉽게 위축되는 성격 탓에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을 할 때마다 장애물에 부딪혔다. 조별 수업과 발표 수업이, 회의와 미팅이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경험이 쌓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벽이 줄지어 세워졌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 새로운 주제, 새로운 장소. 아무리 깨뜨려도 쌓이지 않고 끝나지 않는 게임처럼."

p. 164

"정신은 한 꺼풀 뒤덮인 막으로 싸여 있고, 불투명한 막 속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한다. 막을 통해 여과되는 생각은 본심과는 다르며 본심의 찌꺼기는 그대로 정신에 쌓여 고이고 썩는다. 그래서 생각은 늘 개운하게 청소되지 못하고, 찌꺼기로 가득 찬 본심 속에서 좋은 생각이 걸러지기 만무하다. 진흙탕을 걸러내도 누런 물이듯, 내게서 거르고 걸러낸 생각도 짙고 불투명한 어둠이다. 그래서 글자를 생각을 비유를 꾸며내고 감춘다. 그렇게 정제되고 포장된 생각은 언뜻 보면 있어 보이지만, 결국 별거 없는 생각일 뿐이다."

p. 200

"그 시절 내가 가진 재능이라곤 타인의 마음을 할퀴는 것뿐이었다. 까만 밤 등불처럼 내겐 사람들의 약점이 너무나 또렷이 보였고, 그걸 짚고 공격하기를 즐겼다. 왜 그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정확히 답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나도 날 잘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몰랐기에 세상이 아는 척하는 걸 견딜 수 없었고, 확신하는 자들을 보면 숨이 차고 메스꺼웠다. 나는 그들의 믿음 속 약점을 귀신같이 찾아내 헐뜯었고, 그들이 당황하거나 때로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위안했다. 참으로 조악한 삶이었다."

p. 202

"누구나 질문을 한다. 그리고 질문을 받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 같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그 순간 목이 메거나 낯간지러워서, 또는 상대가 싫어할까 봐, 그깟 부끄러움이나 자존심 때문에 많은 물음을 삼켜낸다. 친구는 내게 질문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나 역시 수많은 질문 더미 속에서 간신히 몇 가지를 골라 꺼낼 뿐이다. 더 은밀하고 무겁고 개인적이고 유치하고 뻔한 질문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말이다."

p. 204

© Kyuwon Le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