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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역사, 설혜심

"소비는 생산보다도 더 밀접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현대인을 소비하는 인간, 즉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생산과 노동을 무섭게 점령해가는 상황에서 소비는 머지않아 인간에게 남은 가장 중요하고도 고유한 활동이 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물건은 넘쳐났고, 경제는 돌아가야 했고, 그 한편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해가고 있었다. 남성들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부를 과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아내나 딸, 연인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인 능력을 드러내고자 했다."


p. 52



"물질적인 신체와 의약품, 그리고 비물질적인 욕망은 서로 뒤엉켜 변주하며 새로운 사회적 기준과 행위를 만들어낸다. '비아그라'가 출시된 후 성적 능력의 새로운 척도가 나타났다든가, 사회적 압력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성형수술을 하는 세태나, 친구들과 단체로 목욕탕에서 마치 놀이처럼 눈썹 문신을 받는 사례들을 생각해보라. 여기서 나타나는 욕망, 압력, 행위들은 생리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p. 121



"그런데 다시금 여성이 재봉틀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뜻밖에도 의학계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1869년 아델프 에스파뉴Adelphe Espagne라는 의사가 재봉틀을 사용할 때의 움직임이 여성의 팔과 가슴, 복부에 쇼크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사들도 이에 동조하며 이 복잡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여성의 능력 밖의 일이라면서 결국 흥분과 긴장, 월경 불순 같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p. 133



"이렇게 보자면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계속 신상 백bag을 원한다든지, 언제 쓸지도 모르면서 새로 출시된 컬러의 립스틱이나 매니큐어를 사들이는 것은 소비와 수집 양쪽에 걸쳐 있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수집과 소비는 실제 용도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노벨티를 찾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르네상스 시기 엘리트들이 낯설고 새로운 물건을 수집하며 정체성을 학보해갔듯이,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신상을 구매하며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를 탐색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 205



"비단 쇼핑 공간만이 노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노인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거나 전면에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미묘한 문화가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보통 근대성의 한 단면이라고 풀이된다. 생산과 진보를 중요시하는 근대사회는 노인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임의로 규정하고, 그들을 중심적 위치에서 소외시켰다. 이 과정에서 특히 노인은 문화적으로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된 존재로 폄하되어 현실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학자들은 '노인'이란 존재와 '죽음'이라는 현상이 "성공적인 중간계급의 풍요로운 라이프 스타일에서 종종 차단되었다"고 주장한다."


p. 257



"그런데 박람회를 반대하는 의견 또한 만만찮았다. 특히 하이드 파크가 전시장 부지로 결정되나 반대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반대자들은 하이드 파크에 있는 수많은 희귀종 나무가 박람회장 공사로 인해 멸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의사들은 외국인 참가자나 관람객을 통해 성병 같은 전염병이 들어와 영국인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성직자들도 나서서 인간의 오만한 발상인 대박람회는 결국 신의 분노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생산업자들은 박람회를 통해 값싼 외국 물건들이 수입될 것이며, 그 결과 국내 산업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주최 측을 비난했다."


p. 311



"대박람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1850년대 영국이 번영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해외 식민지 수탈로 얻은 대영제국의 풍요가 조금씩 사회 하층에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임금 상승 등 노동계급의 상황도 개선되어갔다. 1830~1840년대 차티스트운동 등으로 표출되었던 사회적 불만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좀 더 여유로운 시절이 도래했던 것이다. 수정궁을 찾은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집단행동을 통해 권리를 찾으려 하는 위험한 군중이 아니었다. 이들은 거대한 상품 더미의 스펙터클을 보러 모여든 구경꾼이었다."


p. 322



"18세기 후반 영국의 설탕거부운동은 윤리적 소비의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오늘날에는 '착한 소비' 운동처럼 소비 행위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의식을 투영하는 경향이 범세계적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윤리적 소비는 그 자체가 '빅 비즈니스'가 되어가는 측면이 있다. 다른 빅 비즈니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문제가 되었던 비윤리적인 요소를 제거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안적 생산방식이 미화되기도 하고, 정치적 이유를 앞세워 그 이면에 놓인 문제들이 은폐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윤리적 소비운동인 설탕거부운동에 동인도제도산 설탕이 불러온 반전은 눈여겨봐야 한다. 정치성을 필수조건으로 삼는 윤리적 소비운동이 왜 반드시 정치성과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선례이기 때문이다."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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